2026년 2월, 운 좋게 쓰촨 미식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중국 방문 자체가 처음이었고 쓰촨은 생소한 이름이었는데, 우리가 흔히 먹는 ‘사천짜장’의 그 사천이 바로 이곳이더군요. 마라와 훠궈의 본고장이자, 정말 맛있는 매운맛이 있는 곳으로 소개받은 쓰촨성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미식,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백주(빠이주)였습니다.
특히 쓰촨의 농향형 백주는 기대 이상이었는데요. 쓰촨의 맛과 술을 집중적으로 즐기며 느꼈던 매력적인 경험들을 기록해 보려 합니다.
아울러 중국은 매장에서 파는 술도 가짜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격이 싸다고 무턱대고 샀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현지에서 추천받아 실제로 술을 샀던 믿을 만한 시내 매장 두 곳을 함께 남깁니다. 길을 걷다 보면 아무 매장에서나 술을 팔지만, 잘 모르는 상태에서 구매하는 건 피하는 게 좋습니다. (백주뿐만 아니라 와인 구매 역시 조심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아래에서 자세히 다뤄볼게요.)
1. 52도의 반전: 직접 맛본 쓰촨 4대 백주 시음기
일단 마셔본 4대 백주를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수정방 (水井坊): 청두의 자부심이라 불리는 술이라는데, 병 디자인부터 예술적입니다. 맛이 매우 섬세하고 부드러워 입문용으로 가장 추천되는 술이라고 합니다.
- 오량액 (五粮液): 농향형 백주의 정점입니다. 5가지 곡물이 주는 복합적이고 깊은 풍미가 일품이에요. 라인이 다양한데 25만원 짜리 샀어요. 아주 맛있습니다. 아 또 먹고 싶네요.
- 검남춘 (剑南春):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가성비 명주입니다. 품질은 국가급 명주급이라는데 가격은 합리적이라 실속 있는 선택지로 추천해요.
- 노주노교 (泸州老窖): 가성비 ‘두곡’ 라인이 가격때문에 혹하지만 ‘특곡’으로 드셔보세요. 정말 매력적입니다. 특유의 시원하고 깔끔한 뒷맛 덕분에 현지 요리와 잘 어울렸습니다.
쓰촨 미식 여행의 백미: 백주 페어링
이번 쓰촨 여행을 하면서 가장 놀랍고도 부러웠던 건 중국 특유의 ‘자비로운 술 문화‘였어요. 식당에서 따로 술을 팔고 있는데도 외부에서 사 온 술을 테이블에 올려두는 게 전혀 실례가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잔을 달라고 하면 인원수대로 넉넉하게 갖다 주는데, 추가 비용도 따로 없으니 술 좋아하는 여행자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고마운 미식 환경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첫날밤, 노주노교와 홍화랑 10
청두 공항에 내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일행들과 달려간 곳은 숙소 옆 편의점이었어요. 거기서 골라온 술이 바로 노주노교 특곡과 홍화랑 10이었습니다.

- 노주노교 특곡: 쓰촨을 대표하는 화사한 농향형 백주입니다.
- 홍화랑 10: 묵직하고 깊은 맛이 매력적인 장향형 백주죠.
이 술들은 쓰촨의 매운맛이 응축된, 그야말로 ‘진퉁’ 훠궈와 함께했습니다. 화자오의 얼얼함 때문에 혀가 마비될 때쯤 백주 한 잔을 딱 마셔주면, 신기하게도 입안이 말끔하게 리셋되는 기분이었어요.

처음이라 두 술의 미묘한 차이를 다 음미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 강렬했던 첫 만남만큼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죠.(진짜 훠궈 못잊어 못잊어. 저렴한 가격도 못잊어요…)
원조 마파두부부터 미슐랭 식당까지 오케이
여정 중에 마트에서 마주친 수정방, 오량액, 검남춘은 보이는 족족 저의 백팩에 담았습니다. 이 술들은 저와 함께 청두 곳곳(주로 식당들)을 누볐죠ㅎㅎ. 마파두부의 원조집인 ‘진마파두부’는 물론이고, 청두의 정갈한 맛을 보여준 여러 미슐랭 선정 식당들에서도 이 백주병들을 가지고 다녔어요.

어느 식당을 가든 기꺼이 잔을 내어준 덕분에, 화려한 쓰촨 요리와 백주의 완벽한 페어링을 아주 자유롭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52도, 선입견 깨버린 매력적인 백주
사실 처음에는 ’52도’라는 숫자만 보고 “너무 독한 술 아닐까?” 하는 선입견을 가졌는데, 직접 겪어본 백주는 완전히 딴판이었습니다.
- 목 넘김: 예상외로 너무 부드러워서 놀랐고, 마무리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합니다.
- 풍미: 코끝에 감도는 화사한 향이 입안에 기분 좋은 개운함을 남겨줘요.
- 향의 차이: 이번엔 제대로 비교하지 못했지만, 장향형은 묵직하고 꼬릿한 특유의 향이 있어 농향형과는 매력이 확연히 다르다고 해요. 다음번엔 꼭 제대로 음미해보고 싶습니다.
백주 경험의 완성, ‘한 모금’의 미학이 아닐까

백주 마시는 재미를 배가시켜준 건 바로 그 작은 백주잔이었습니다.
딱 한 모금 들어가는 작은 잔 덕분에 술을 탁 털어 넣고 나면 자연스럽게 식사에 집중하게 돼요. 그러다 술이 생각나면 다시 한 잔. 이렇게 마시니 술배가 부르지도 않고, 쉽게 취하지도 않아서 술은 술대로 음미하고, 음식은 음식대로 즐길 수 있었어요.
쓰촨의 강렬한 매운맛과 화사한 농향형 백주의 조화는 여행을 다녀온 지금도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쓰촨 요리의 진가는 역시 백주와 함께일 때 완성된다는 걸 온몸으로 배우고 온 여행이었습니다.
2. 정품 백주 쇼핑 마트 두 곳 추천
중국 여행에서 술을 살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이 정품 여부인데요. 제가 추천받아 샀던 마트 두 곳을 소개합니다.

- Ole’ 슈퍼마켓 (프리미엄 쇼핑): 타이쿠리 같은 중심가에 위치한 고급 마트입니다. 수정방, 오량액 등 고가 라인업을 정찰제로 안전하게 구매하기 좋고, 매장이 깔끔해 쇼핑 환경이 매우 쾌적합니다. 이곳에서는 고가의 귀한 와인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와인은 조심하세요. 일행분들이 와인을 몇번 구매했었는데 가품은 아니었을지 모르나 관리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았던지 맛이 간 것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와인 경험은 현지 미슐랭 식당에서 마셨던 중국 와인이 신선하고 의외의 맛이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와인을 먹을 때는 괜찮은 식당에 가서 주문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어느 마트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그 와인 또 먹고싶네요.


- 영휘마트 (Yonghui / 가성비 쇼핑):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대형 마트라고 해서 찾아 갔습니다. 백주 종류가 압도적으로 많고 가격이 저렴해서 노주노교 등 대중적인 라인업을 대량으로 사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저는 선물용 술을 사러 마지막날 이곳을 급하게 찾았었는데 보던중 가격이 괜찮았습니다. 다음에 오게 되면 이곳에서 먼저 마실 술을 사도 되겠다 싶었습니다.(매장이 여러곳 뜨던데 숙소 가까운 곳으로 찾아가면 될 것 같습니다)

3. 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쓰촨 백주의 배경
쓰촨 백주가 중국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유명세를 떨치는 데에는 지리적 요인과 역사적 전통, 그리고 독특한 제조 기법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이유를 정리해 드립니다.
천혜의 자연환경: ‘천연 발효 창고’ 쓰촨 분지
쓰촨성은 거대한 분지 지형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바람이 적고 안개가 자주 끼는 고온다습한 기후를 유지합니다. 한국의 대구와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러한 환경은 백주 발효에 필수적인 유익한 미생물이 번식하고 활동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합니다. 마치 도시 전체가 거대한 자연 발효실 역할을 하며 다른 지역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풍부하고 화사한 향을 만들어냅니다.
맑고 풍부한 수질: 장강 상류의 선물
좋은 술의 80% 이상은 물이 결정합니다. 쓰촨은 장강 상류에 위치하여 미네랄이 풍부하고 오염되지 않은 청정 수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맑은 물이 백주 특유의 달콤하면서도 깔끔한 뒷맛을 완성하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수백 년의 역사를 품은 ‘노교(老窖)’ 기법
쓰촨 명주들의 가장 큰 비밀은 ‘노교’라 불리는 오래된 진흙 발효 구덩이에 있습니다.
- 미생물의 보고: 발효 구덩이가 오래될수록 그 안에 서식하는 독특한 미생물 군집이 풍부해지며 술에 복합적인 향을 입힙니다.
- 살아있는 화석: 노주노교 같은 브랜드는 무려 1573년부터 사용해온 구덩이를 지금까지 유지하며 그 맛과 향의 깊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쓰촨 요리와의 완벽한 조화: ‘리셋’의 미학
쓰촨 요리는 마라(麻辣)로 대표되는 맵고 기름진 음식이 많습니다.
- 기름기 제거: 50도가 넘는 고도수의 백주는 입안에 남은 음식의 기름기를 깔끔하게 씻어주는 세척 효과가 탁월합니다.
- 미각의 리셋: 얼얼한 매운맛으로 마비된 혀를 백주의 화사한 향이 깨끗하게 리셋해주어, 다음 음식을 다시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돕습니다.
이처럼 쓰촨 백주는 단순한 술을 넘어, 그 땅의 기후와 역사, 그리고 식문화가 응축된 하나의 문화적 결정체이기 때문에 독보적인 명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